핵심이념.

경영철학 2007. 7. 18. 14:51

弘幸人間 - 널리 인간을 행복하게 하자.

자유롭게 행복을 추구하며생존을 영위하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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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의 힘...

경영철학 2006. 2. 3. 12:40
경청의 힘... 도요타와 GM, IBM의 운명은 여기에서 갈렸다


경청은 자동차 업계의 절대강자였던 GM과 도요타의 운명을 갈랐다. 세계 1위의 자동차 업체요 미국의 상징이었던 GM은 고객, 직원, 주주들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다. 도요타는 정반대로 행동했다.

GM이 생산직원들을 졸개나 하인처럼 부릴 때 도요타는 그들로부터 더 싸고 더 품질 좋은 차를 만드는 법을 들었다. GM보다 월급과 복리후생이 못하지만 도요타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입을 연'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도요타의 경영진들이 현장으로 내려가 고개를 숙이고 경청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GM의 경영자들은 막대한 복리 후생비를 지급하는 길을 택했다. "돈 줄 테니 닥치고 일이나 하라!"라고 말이다.

래리 바커의 '경청의 힘' 중에서 (이아소, 21p)

* **

경청은 남의 말을 열심히 듣는 것을 말합니다. 고객의 말, 친구의 말, 자녀의 말...
이런 경청은 단순히 '매너가 좋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고객을 이해하고, 설득하고, 궁극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역량'의 문제입니다.

자녀에게 일방적으로 설교를 늘어놓는 아빠와 자녀의 말을 잘 들어주고 적절한 조언을 해주는 아빠. 손님에게 유창한 언변으로 지역 부동산 현황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는 부동산중개업자와 손님의 말을 경청하면서 그가 원하는 물건을 찾아주는 중개업자. 누가 좋은 아빠이고 유능한 중개업자인지는 불문가지입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GM. 한때 자동차 업계의 최고봉이었던 GM은 고객과 직원, 주주들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도요타는 직원들의 말을 경청했고, 그들로부터 비용은 절감하면서 품질은 높은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들었습니다.

거대기업 IBM도 PC혁명 당시 고객의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죽어가는 공룡'이라는 말을 듣게 됐습니다. 그리고 구원투수로 등판한 루 거스너는 '경청의 리더십'을 통해 IBM을 살려냈습니다.

"당신은 자랑스런 빅 블루(IBM의 애칭)를 회생시킬 방안을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 그 방안을 들려주세요." 루 거스너는 임원과 직원들에게 이렇게 물었고, 그들의 입에서 나온 방안을 그들의 권한과 책임하에 추진토록 해 IBM을 살려냈습니다.

사람을 이해하고, 설득하고, 궁극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역량. 성공은 유창한 언변이 아니라 경청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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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직원의 선택.

경영철학 2005. 12. 6. 09:54

직원채용기준.

*.믿을수 있는 사람인가?

*.건강상문제는 없는가?

*.일하고자 하는 동기나 욕구가 충분한가?

*.일을 해낼 충분한 능력이 있는가?

*.가정이 원만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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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감명 깊은 이야기] 스티브 잡스의 6월 12일 스탠포드 대학 졸..

경영철학 2005. 9. 13. 11:56

김학규님의 홈페이지에 김주완님께서 올린 글이십니다.. ( http://www.lameproof.com/)

스티브 잡스의 6월 12일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축사

원문 :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tlsdpfl&folder=12&list_id=5037743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 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구요. 딱 세가지만요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먼저,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전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년 반 정도는 도강을 듣다,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So why did I drop out?
왜 자퇴했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그 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던 거지요.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그녀는 제 미래를 생각해, 대학 정도는 졸업한 교양있는 사람이 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그들은 여자 아이를 원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그들 대신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들은 한 밤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어떡하죠?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
They said: "Of course."
"물론이죠"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그런데 알고보니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못한 사람이어서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친어머니는 양부모님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후 몇개월이 지나서야 화가 풀렸습니다.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17년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그러나 저는 멍청하게도 바로 이 곳, 스탠포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 공부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교육이 그 것에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게다가 양부모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잘 될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지금 뒤돌아보면 참으로 힘든 순간이었지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자퇴를 하니 평소에 흥미없던 필수과목 대신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관심있는 강의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전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한 병당 5센트씩하는 코카콜라 빈병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또 매주 일요일,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이나 걸어서 헤어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맛있더군요^^ 당시 순전히 호기와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Let me give you one example:
예를 든다면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그 당시 리드 칼리지는 아마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은 너무 아름다웠구요.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어차피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서체에 대해서 배워보기로 마음먹고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그 때 저는 세리프와 산 세리프체를 배웠는데, 서로 다른 문자끼리 결합될 때 다양한 형태의 자간으로 만들어지는 굉장히 멋진 글씨체였습니다.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깊고, 예술적인 것이었고, 전 그 것에 흠뻑 빠졌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사실, 이 때만해도 이런 것이 제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될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매킨토시를 처음 구상할 때, 그 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아마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아니였나 생각합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뛰어난 인쇄술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겁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업?) 등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이런 믿음이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제 인생의 고비 때마다 힘이 되워줬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두번째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제가 20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2백억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내가 세운 회사에서 내가 해고 당하다니!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잘 맞는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처음 1년은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이 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 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저는 인생의 촛점을 잃어버렸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톤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고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 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했습니다.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저는 완전히 '공공의 실패작'으로 전락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그러나 제 맘 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나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이후 5년동안 저는 '넥스트', '픽사',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픽사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넥스트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넥스트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엄청난 일들을 겪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정말 독하고 쓰디 쓴 약이었지만, 이게 필요한 환자도 있는가봅니다.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때로 세상이 당신을 속일지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쇼.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전 반드시 인생에서 해야할만 일이 있었기에, 반드시 이겨낸다고 확신했습니다.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듯, 일도 그런 것이죠.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노동'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자신의 일을 위대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있는 그 순간 뿐입니다.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지금도 찾지 못했거나, 잘 모르겠다해도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깊어질 것입니다.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그러니 그 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현실에 주저앉지 마세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17살 때, 이런 문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 후 50살이 되도록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아니오!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
왜냐구요?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죽음' 앞에서는 모두 밑으로 가라앉고, 오직 진실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그전까지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는데요.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의사들은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그 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동안 해줄수 있는 것을 단 몇달안에 다 해치워야된단 말이었고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임종 시에 사람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말이었고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전 불치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그 날 저녁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그 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가고 싶지 않습니다^^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싶다는 사람들조차도 당장 죽는 건 원치 않습니다.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다 죽을 것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삶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 '죽음'이니까요.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죽음이란 삶의 또다른 모습입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지금의 여러분들은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할 것입니다.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너무 극단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마십쇼.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도그마-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십쇼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타인의 잡음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이미 마음과 영감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죠.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란 책이 있었습니다.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넣은 책이었지요.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노이드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35년 전의 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엄지들고 차를 유혹(?)해서 빌려타며 여행하는 것/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정도였지요.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그 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분야에서 이런 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Thank you all very much.
감사합니다.

(This is the text of the Commencement address by Steve Jobs, CEO of Apple Computer and of Pixar Animation Studios, delivered on June 1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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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경영철학 2004. 12. 6. 10:33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학교 생활은 초등 학교 4년이 전부입니다. 가난한 집의 아들이었기에 12살에 가족의
생계를 맡기 시작하였습니다. 시장에서 해보지 않았던 일이 없었을 정도로 많은 경험을
하였습니다만 자신의 처지를 한번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내가 열두 살 나이로 가장이 되어 여덟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을 때, 나는 막막하거나 두렵다기보다 그것이 그냥 내 운명이려니
생각했다."

이윽고 청년이 되어 시작한 일이 한방 제약회사의 영업직 사원이었습니다.
그는 물건을 팔 수 있는 곳이라면 국회든 어디든 발벗고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한번
물건을 사간 고객은 끝까지 책임지고 관리하습니다.

이런 외판원 시절의 험난한 경험과 몸소 체험한 지식을 바탕으로 1963년 창업를 창업
하였습니다. 그는 지금 70을 넘어선 나이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현역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
오늘날 우황청심원, 쌍화탕, 그리고 비타 500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광동제약의
창업자 최수부 회장입니다.

<최수부가 들려주는 '성공의 기회를 만드는 삶의 원칙' >

#1. 흔들리지 않는 초심
최초의 결심을 잊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자, 반드시 값진 열매를 맺는다.
하나의 물건을 따는 순간, 고객과의 관계는 끝이 아니라 비로소 시작이다.

#2. 당당한 태도와 배짱
정중함과 비굴함은 다르다. 비굴한 자세로 일하지 말라

#3. 굳은 의지
가난 때문에 그만둬야 했던 학업, 그러나 나는 시장에서 더 뜨거운 삶의 지식을 배웠다.

#4. 신용
장사꾼은 신용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 팔다리가 부러지고 달러 이자를 낼지라도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5. 경청
위로 올라갈수록 많이 들어라. CEO는 입은 하나이되, 귀는 열 개 백개로 늘어나야 한다.

#6. 긍정적인 시각
시련은 산삼보다 더 좋은 보약이다. 위기를 성공의 길로 가는 징검다리로 보느냐,
실패의 신호로 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진다.

#7. 발상의 전환
마음 속에 항상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을 품어라. 나는 우황청심원을 복용하는 미국인,
쌍화탕을 마시는 러시아인들 꿈꾼다.

#8. 도전정신
기회를 제 발로 오는 것이 아니라 제 손으로 만드는 것이다.

#9. 끈기
큰 그릇은 늦게 완성되는 법이다.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끈기있게 스스로를 채워가라. 기회는 온다.
-최수부, <뚝심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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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게이츠의 인생충고 10가지

경영철학 2004. 10. 4. 16:55

- 빌게이츠

빌게이츠가 마운틴휘트니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해준 인생충고10가지

마이크로사의 빌 게이츠가 가주에 있는 마운틴 휘트니(Mt.Whitney)고등학교를 방문하고 사회문을 밟기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참고될 조언을 들려주었다.

1. 인생이란 원래 공평하지 못하다.
그런 현실에 대하여 불평할 생각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2. 세상은 네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세상이 너희들한테 기대하는 것은 네가 스스로 만족하다고 느끼기 전에 무엇인가를 성취해서 보여줄 것을 기다리고 있다.

3. 대학교육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연봉이 4만 달러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하지 말라.

4. 학교선생님이 까다롭다고 생각되거든 사회 나와서 직장 상사의 진짜 까다로운 맛을 한번 느껴봐라.

5.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마라.
너희 할아버지는 그 일을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6. 네 인생을 네가 망치고 있으면서 부모 탓을 하지 마라.
불평만 일삼을 것이 아니라 잘못한 것에서 교훈을 얻어라.

7. 학교는 승자나 패자를 뚜렷이 가리지 않을 지 모른다.
어떤 학교에서는 낙제제도를 아예 없애고 쉽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사회 현실은 이와 다르다는 것을 명심하라.

8. 인생은 학기처럼 구분되어 있지도 않고 여름 방학이란 것은 아예 있지도 않다.
네가 스스로 알아서 하지 않으면 직장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9. TV는 현실이 아니다. 현실에서는 커피를 마셨으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옳다.

10. 공부 밖에 할줄 모르는 ˝바보˝ 한테 잘 보여라.
사회 나온 다음에는 아마 그 ˝바보˝ 밑에서 일하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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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리더, 이렇게 행동한다"

경영철학 2004. 8. 12. 18:46
"실패한 리더, 이렇게 행동한다"

부하 직원이 잘못했을 때는 '혹독하게' 질책하라. 열심히 일하면 '그러려니' 생각하라. 그러면 당신은 실패한 리더가 될 것이다.

LG경제연구원이 12일 내놓은 '실패하는 리더, 이렇게 행동한다'는 보고서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보고서를 만든 장영철 연구원은 "성공하는 리더와 실패하는 리더의 차이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실패하는 리더들의 특성.

▽필벌(必罰)이 최고다=책임감과 열의를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인정하는데 인색하다. 질책과 책임 추궁만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고치라는 내용은 없고 사소한 일에도 꼬투리를 잡아 야단을 친다.

▽시키는 대로 하라=구성원들이 아이디어를 내면 이를 무시하고 '시키는 대로나 하라'는 반응을 보인다. 반발하는 사람들을 설득하지 않고 동조하는 사람들만을 중심으로 일을 추진한다.

▽변화에 눈과 귀를 막는다=기존의 업무 체제를 고집하고 과거의 성공 경험을 그대로 적용하려 한다. 업무 수행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해 현상 유지에만 중점을 둔다.

▽부하 직원의 개인생활은 무시한다=부하 직원이 잠시 여유를 갖는 모습을 보면 불안해한다. 실적을 위해 과도한 개인의 희생을 요구한다. 개인의 자질과 능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조직 상황에 따라 업무부담을 준다.

▽실행력이 부족하다=너무 많은 변수를 고려해 제때에 기회를 포착하지 못한다. 상대방이 강하게 나오면 자신의 주장을 쉽게 굽힌다. 한번 내린 결정을 번복하는 경우가 많다.

▽등잔 밑이 어둡다=결정이나 지시를 내려놓고 실제로 실행이 되는지를 챙기지 않는다. 신뢰하는 측근의 보고는 사실 여부 확인을 등한시한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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